Anissa’s Story

Anissa의 이야기

(Image description: Selfie of Anissa.)

(Image description: Selfie of Anissa.)

My car had broken down. I wanted to give my daughter a good Christmas. So, I started working at this retail store and a friend of mine came in and said she wanted to return some things. I helped her out and, after then, she continued to ask to return things a few more times. I didn’t think anything of it. It was my second seasonal job and it was during the holidays. I was just trying to get my hours in and make sure I had a ride to get home.

 제차가 고장이 난 상태였어요. 하지만 저는 제 딸에게 좋은 크리스마스를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백화점에 취직을 해서 일을 하기 시작했어요. 어느날 친구 한명이 쇼핑을 하러 왔고 어떤 물건을 교환하고 싶어했어요. 제가 그 친구의 환불을 도와줬고 그 친구는 몇번 더 찾아와서 물건 환불하는걸 도와달라고 부탁했죠. 저는 별생각 없이 환불을 해줬어요. 저는 백화점이 바쁜 시즌에 단기로 채용이 되어서 잠시 일하는 거였기 때문에 저는 최대한 많은 시간을 배정받고 그리고 집에 갈때 라이드를 받는데만 온신경을 다 쓰고 있었거든요.

Once I started working my full-time job in the beginning of 2004, the sheriffs came knocking on my door. They asked me if I knew a person and whether my name was Anissa Ripley. I said yes. There were many accusations against me. I went back and forth talking with the sheriffs, cooperating with them, and explaining that I had returned her stuff because I didn’t find it to be a big deal and didn’t feel the need to have my manager’s code put in every time. At the end of it all, I was arrested. My full-time job bailed me out so that I could continue working. They were very helpful. I was assigned a public defender because I didn’t have the money to hire a lawyer. My lawyer came back offering 1 to 3 years in prison time. I couldn’t do that because I am a single mother. But they said I got a good deal because my full time gave me a letter so they will let me out on work release. They said my crime was not a big deal. My crime had been falsifying business records worth about $2,000-$3,000 and they said I would be out soon.

제가 2004년 초반에 다른 곳에서 정규직으로 전환을 하고 있을때 경찰이 제 집을 찾아왔어요. 경찰들은 저에게 아니사 리플리라는 사람을 아는지 혹시 본인인지를 물어봤고 저는 그렇다고 대답했죠. 경찰들은 저에대해 많은 용의점을 갖고 저희집을 방문한 거였어요. 저와 경찰의 여러가지 질문에 대답을 하면서 협조했고 저는 제 친구의 환불요청이 큰 금액이 아니었기 때문에 제 매니저를 불러서 매번 코드를 집어넣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저 혼자 환불을 진행했다고 대답했어요. 결국 그날 저는 체포가 되었습니다. 제 당시 직장에서 제가 계속 일할수 있도록 보석금을 내줘서 저는 일단 나올수 있었어요. 정말 큰 도움이었습니다. 저는 변호사를 고용할 상황이 아니어서 국선변호사가 저에게 배정되었고 제 변호사는 저에게 와서 제 범죄의 대가로 1-3년의 형량을 사는 것으로 정리하는게 어떠냐고 물어봤어요. 저는 당시에 한부모 가정의 가장으로 딸을 키우고 있었기때문에 그럴수 없다고 했지만 제 변호사는 당시 제 직장에서 저를 지지하는 편지를 보내줬고 그때문에 일을 한다는 조건으로 제가 가석방을 받을수 있는 좋은 조건이라고 얘기했어요. 그리고 제 범죄가 큰 아니라고 하면서 제 죄목은 $2,000 - $3,000 정도되는 액수의 거래를 거짓으로 만들어냈다는 거였어요. 변호사 말에 의하면 저는 금방 석방받을수 있을 거라고 하면서요.

So, I agreed. He said I will spend 6 weeks at most and I will be out on work release. I signed and I was taken into custody. I was sent up to Bedford Hill, a women's prison in New York City, where I was processed at a maximum security prison. While I was up there, I got a visitor. I was confused because the prison was 7-8 hours from where I am from. I went down to the visiting area and there were three men in matching pants. I didn’t know who they were. They introduced themselves as ICE agents, which didn’t mean anything to me at the time. They started to ask my questions like, what border did you cross? I said I had no clue. I said I came in with my parents when they adopted me. I explained that my dad is now retired from the U.S. army.

그래서 당연히 저는 제 변호사의 오퍼에 동의했어요. 그 분은 제가 6주정도 감옥살이를 하고 그 후에는 노동석방 프로그램을 통해 집에 올수 있을거라고 했죠. 저는 필요한 서류에 서명했고 이감이 되었습니다. 저는 배드포드 힐에 이라고 불리는 가장 경비가 삼엄한 뉴욕시의 여성 교도소로 보내졌습니다. 제가 거기에 있는동안 어떤 분이 저를 방문했어요. 저는 감옥의 위치가 제가 사는 곳에서 7-8시간 걸리는 거리이기 때문에 누군지 몰랐고 너무 깜짝 놀랐어요. 그분들은 자신들이 ICE 요원이라고 말했어요. 저는 당시엔 그말이 무슨뜻인줄 몰랐죠. 그 요원들은 저에게 언제 국경을 건넜는지 물어봤고 저는 그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전혀 몰랐어요. 저는 그들에게 제 부모님이 저를 입양했다고 말했고 제 아버지가 은퇴한 미국육군재향군인이라고 얘기했어요.

Eventually, I understood that they thought I was there illegally. Once I explained that I was adopted, they said they just needed to verify some information and paperwork. They said it was going to be okay. After I was processed and moved to another medium security prison in Albion, I received an order of deportation in the mail. I had been eligible to go on work release in three weeks at that point. I freaked out and called my parents, asking about this order of deportation. They told me, “had you not gotten in trouble, you wouldn’t be facing deportation. We’ll look into this so call us back in a week.” When I called back in a week, my parents said their lawyer told them they could get in trouble for human trafficking. My parents stopped talking to me after that. 

대화를 하다보니 저는 그 요원들이 제가 미국국경을 불법적으로 건넜다고 생각한다는걸 이해했습니다. 제가 입양인이라는걸 설명하니 요원들은 몇가지 정보와 서류를 확인해야한다고 말했고 저에게 모든것이 괜찮을 거라고 얘기해줬습니다. 그후에 저는 알비온의 교도소로 옮겨졌고 우편으로 추방명령이라는 서류를 받았습니다. 이 당시에 저는 3주후면 노동석방 프로그램으로 집에 갈수 있을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 편지를 보고 저는 너무 불안해서 제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이 서류에대해 물어봤죠. 제 부모님은 저에게 “니가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으면 추방당하지 않았을꺼라며 그 서류에 대해 알아보고 일주일 뒤에 저에게 전화해줄게”라고 얘기했죠. 1주일 후에 통화했을때 제 부모님은 변호사로부터 그들이 인신매매로 처벌 받을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고 그 이후에 저와 인연을 끊었습니다.

I didn’t know what would happen to me—whether I would be deported to Jamaica or Panama. I started losing my mind. People told the only way I won’t get deported is by getting an immigration lawyer. But I didn’t have money. If I had money, I probably would’ve gotten a one to two year sentence I started to think about what I could sell. I only had household goods and nowhere near enough to pay for a lawyer. A girl in prison said I must have 401ks since I had been working all this time. She told me to cash my 401ks and fight this. So, I cashed my 401ks and hired a lawyer from New York City. She started going with me to court. She kept on reassuring me that I won’t be deported. I was taken to Hudson County Jail in New Jersey, where I was held in the infirmary while I was fighting my case. The last time I went to immigration court, I was informed by the judge that my lawyer had died of an asthma attack and that I had two options: to sign to get deported to get another lawyer.  

저는 저에게 무슨일이 일어나는지 이해할수 없었어요. 제가 자메이카로 추방될지 파나마로 추방될지도 몰랐고요. 저는 정말 정신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저에게 추방당하고 싶지 않으면 이민변호사를 고용하라고 말해줬지만 저는 그럴돈이 없었어요. 제게 돈이 이었다면 처음부터 사법거래를 하지 않았을 거예요. 저는 제가 갖고있는 물건중에 무엇을 팔수 있을지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저는 생필품 같은 것 밖에 안갖고 있었고 그런것들을 팔아봤자 변호사를 고용할 정도의 액수는 되지 않았죠. 교도소의 어떤 분이 저에게 평생동안 일해왔으니 401k가 있지 안냐고 했어요. 그리고 401k를 출금해서 변호사를 고용하라고 했죠. 그래서 저는 401k를 출금해서 뉴욕의 변호사를 고용했습니다. 제 변호사는 저와 함께 이민법원에 가기 시작했지만 어느날 판사로부터 제 변호사가 천식으로 인해 급사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리고 그 판사는 저에게 두가지 옵션이 있다고 했죠: 추방당하거나 아니면 다른 변호사를 고용하거나.

I have no memories of Jamaica because I was too young, and in Panama, I was sexually abused by my uncles. We didn’t have food in the orphanage and always had lice. There was sexual molestation there too. I couldn’t imagine taking my pre-teen daughter back there. I was determined to cash my 401k and hire another lawyer to keep me from being deported. I remember being in the van by myself and an ICE officer said, “You have been here for I forget how many months; you don’t get mail; you don’t get any packages; nobody comes to visit you; if you stay here, you’re going to get deported because of the way the law is written and you’re just wasting your 401k. If you get deported, then you would be able to keep you 401k and you would be able to fight this from the outside. You’ll have the 401k to survive on while you figure out what you’re going to do.”

저는 자메이카에 너무 어렸을때 살아서 기억이 하나도 않나요. 파나마에서는 제 삼촌에게 성적으로 학대를 당하기도 했고요. 제가 살던 고아원에는 음식이 항상 부족했고 이도 많았어요. 고아원에서도 성추행을 당했고요. 이런 기억이 있다보니 제 어린 딸을 그곳에 데리고 가서 사는 것을 상상할수 없었어요. 저는 제 401k를 모두 출금해서 다른 변호사를 고용해 제 추방에 맞서 싸워야 겠다고 생각했어요. ICE 의 벤 안에서 요원과 했던 대화가 생각나요. “당신이 감옥에 몇달동안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편지 써주는 사람도 없고 소포보내주는 사람도 없고 방문하는 사람도 없어요. 법적으로 봤을때 여기에 계속 있으면 당신은 추방될예정이고 401k를 써서 변호사를 고용한다고 하더라도 결국에는 이길수 없을거예요. 추방이 된다면 401k를 써서 국외에서 싸움을 계속할수 있어요. 401k로 생활비를 쓰면서 다음에 할일에 대해 생각해볼수도 있고요.”

I still didn’t want to be deported. The idea of going to a foreign country as a single mother with my daughter was too much. I called my daughter as much as I could. She was going through separation trauma since she had only had me her whole life. But after talking to my daughter, I decided that I would choose deportation because I needed to get her back to me as soon as possible. I decided I was going to fight this from the outside and I was going to get my daughter back. I had had a student loan and everything that you can possibly imagine as a U.S. citizen. Citizenship is not something you sit down during breakfast and wonder: am I a citizen? I just assumed everything was good. Now this thing was changing everything. 

저는 그래도 추방당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한부모 가장으로서 아이를 키우면 외국에서 살아야 한다는건 너무 큰 시련이었거든요. 저는 제 딸에게 할수 있는한 자주 전화를 했어요. 저는 제 딸에게 유일한 가족이었기때문에 제 딸도 떨어져 지내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었죠. 결국 저는 제 케이스를 해외에서 진행하기로 하고 딸과 함께 살기로 했죠. 저는 미국에서 학자금 대출도 있었고 미국 시민으로서 좋던 싫던 갖고 있는 모든것들을 갖고 있었죠. 시민권이라는게 그냥 밥먹기 전에 앉아서 생각해보는게 아니잖아요: 나 시민권잔가? 저는 당연히 제가 시민권자라고 추측하고 있었지만 모든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죠.

I am still in Panama, fighting to get back. My daughter is in the U.S. and she now works at some company. She has tried explaining her job to me many times, but I don’t understand it. She loves it. If she loves it, I love it. I had to have an emergency hysterectomy last year. My daughter sent me the money she had saved up from her tax returns for my surgery. Because I came here when I was in my 30s, I cannot buy medical coverage. I have a prosthetic leg that an organization in the U.S. bought me. My daughter created a GoFundMe to raise money for my recovery after my surgery. She had bad anxiety. We go through holidays over the phone. My sister passed away last year from cancer and I had to say goodbye to her over video call. It’s been really hard. 

어린 아이로서 저는 제가 똑바로 행동하지 않으면 제 부모님이 저를 다시 고아원에 보낼까봐 너무 두려웠어요. 근데 그 공포는 어른이 되서 저에게 현실로 다가왔죠. 입양은 저에게 가족을 약속했지만 제가 일정기간동안 올바르게 행동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일정기간이 평생이었던거죠. 제 부모님은 저희가 미국시민권을 받을수 있도록 모든 서류를 제출했지만 서류를 제출하고 정부에서 대응하는데 6년정도의 기간이 걸렸고 그 기간동안 저는 성인이 되버려서 더이상 시민권을 받을수 없었죠. 제가 제 이민신분에 대해 알았다고해도 시민권에 필요한 금액을 낼수 없었거나 이민변호사를 고용할수는 없었을 거예요. 2000년도에 1983 년도 이후에 출생한 입양인들에게 시민권을 제공하는 법안이 통과됐지만 저 같이 나이가 많은 입양인들은 수혜를 받을수 없었죠. 이러한 이유로 저는 이번 Reconciliation 과정을 통해 모두에게 시민권을 주는 법안이 통과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As a young child, I feared that my parents would send me back to the orphanage if I didn’t behave right. And my fear came true as an adult. Adoption promised me a family, not just until I misbehaved or not for a certain amount of time, but for all of my life. My parents had put in the paperwork when we got to the U.S. for us to be able to receive our citizenship but there was a six-year lag between the paperwork and government getting back to my parents. By that time, I had aged out. I wasn’t eligible. Even if I had known about my immigration status, I couldn’t have afforded to pay for citizenship or pay for an immigration lawyer and filing fees. In 2000, there was a citizenship act that only covered people who were born after 1983. Those of us who have been left out are older; we’re not cute anymore. But, we’re going to be seeing a lot more of these cases pop up as we get older. That is why we need to pass citizenship for all through the budget reconciliation process. Everyone is hopeful for the way the Senate and the Presidency. I am not as hopeful because I’ve been out here since 2006 and I have seen both Democrats and Republicans in the White House and they both haven’t done anything for us. Even so, I hope that President Biden and congress members keep their word. There’s a lot of issues in the immigrant community that have gotten out of hand for too long. I hope President Biden and congress members know that a lot of people—not just adoptees—are watching, hoping. Sometimes on CNN, I hear about immigration, but I do not hear about the Adoptee Citizenship Act. We need to start being taken care of and these are lives that the government is toying with. I want President Biden and congress members to do what they have promised to do.

많은 사람들이 현 정권과 상원의 구성을 보고 희망을 갖고 있어요. 하지만 저는 그렇게 희망적이진 않아요 왜냐면 저는 2006년 이후에 추방되어서 해외에서 살고 있고 저는 민주당 정부와 공화당 정부를 다 봤지만 그들이 저희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것을 계속 목격했거든요. 또 그렇지만 저는 바이든 정부와 의회에서 그들의 약속을 지키길 바래요. 이민자 공동체에는 너무 오래동안 고쳐지지 않은 많은 이슈들이 있지만 “입양인 시민권 법안”에 대해서는 많은 얘기들이 없어요. 우리는 정부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고 정부정책의 노리개처럼 좌지우지되는 생명들이 많이 있어요. 저는 바이든과 국회의원들이 그들의 약속을 지켰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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