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J’s Story
My parents sent me to Honolulu, Hawai’i when I was in the eighth grade. At this point in time, I had a student visa. Honestly speaking, I didn't like Hawaii because it was miserable for me. I just needed a new place to stay, a new environment. Somehow I had a friend who was moving to Alaska from Hawai’i and I chose to tag along at the last moment of eleventh grade. I graduated high school in Alaska.
8학년이 될 무렵 부모님이 하와이 호놀룰루로 보내셨습니다. 당시엔 학생 비자로 체류중이었어요. 지금 와서야 말 할 수 있는 거지만, 하와이에서의 생활은 너무 끔찍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동네에서, 새로운 환경에서 다시 시작해보고 싶었어요. 하와이에서 알래스카로 이사 간다는 친구 따라 11학년 말쯤 알래스카로 이사를 왔고, 고등학교를 알래스카에서 졸업하게 됐습니다.
After I graduated college, I had a one year permit to work at a job related to my major. There was a company who was going to sponsor me for a green card, but later on I found out they never filed a petition. They had not done anything. So all of a sudden, when my Optional Practical Training time limit was expiring, I learned that I had no status. I tried to go back to school, but I couldn't afford tuition because I had to work full time and go to school full time. This was somewhat impossible and I had very bad moments from trying to do this. I also tried to get a job or find a company that would sponsor me for a green card again. There were not many companies that would do that in 2011. I found a waitress job that hired me under the table and I ended up working three jobs with no break. I worked seven days a week and only went home to sleep. I wasn't sure about what I was gonna do. I was even thinking about going back to Korea, but my extended family kept telling me there must be some way; that if I stay here, I might be able to get something. I didn't have any status for maybe three or about four years.
후에 대학을 졸업하고, 전공과목이랑 동일한 직종에서 1년 간 일을 할 수 있는 취업 허가를 받았습니다. 한 회사가 그린 카드를 스폰서 해 준다고 약속을 했지만, 지나고 난 뒤, 서류 지원조차 해 줄 생각이 없었단 걸 알았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거죠. 그래서 Optional Practical Training (OPT)가 끝나갈 때는 한순간에 미국에서의 신분이 사라졌습니다. 다시 학교로 돌아가야 하나 생각도 했지만, 풀타임으로 일을 하면서 학업을 계속한다는 것은 너무 무리였습니다. 일을 관두자니 비싼 학비가 감당이 안됐어요. 억지로 병행하려고 했으나,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너무 힘겨운 것이 현실이더군요. 동시에 그린 카드를 스폰서 해 줄 수 있는 다른 회사들을 알아봤지만, 2011년 당시에 스폰서를 해 주는 회사를 찾는다는 건, 하늘에 별 따기였죠. 식당에서 서빙 일을 시작하고, 이어 투잡, 쓰리잡까지 뛰며 주 7일을 일했습니다. 일이 다 끝나면 겨우 집에 들어가서 잠을 청하는 게 그나마 쉬는 거였지요. 상황이 너무 힘들어서 어쩔 줄을 몰랐고, 한국에 돌아갈 생각도 종종 했지만, 가족, 친척 모두 미국에서 조금만 더 버티면 상황이 나아지지 않겠냐고 말하는 걸 들으며 몇 년을 버틴 거죠. 한 3 ~ 4년 정도.
Then, I found out I was pregnant. That actually gave me the courage to apply for DACA. I was really afraid that I would have a child and wouldn't be able to be with him. I was scared of deportation with all the information that I put in the DACA application to the USCIS. But I had to do it, because I was going to be a mother. I knew that I would be the only one taking care of this child, because as soon as Alex’s biological father found out I was pregnant, he left. So I just had to do it.
그러던 와중에 임신하게 됐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DACA (청소년추방유예)를 지원할 생각을 바로 하게 됐어요. 아이와 미국에서 함께 할 수 없으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너무도 무서웠고, 아이의 DACA지원을 위해 적어 낸 제 개인 정보를 보고 USCIS (미국이민국)에서 저를 추방할 거란 생각에 너무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나도 이제 어머니 라는 생각을 하며 내 아이는 내가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고, 임신 소식을 듣고 떠나간 아이 아빠의 도움도 없었기에 더 큰 책임감을 느꼈었습니다.
My American parents (non-biological people who I consider family by proxy) encouraged me to go see an attorney, who was actually a dear friend of theirs. They paid for the consultation fee so that I could go see her and hear the options about what would be the best for me and my child. We had prepared for worst case scenarios. For example, what if the ICE agents come to my apartment when I want to go to the hospital? Stuff like that. We had a little plan where I would always look outside the window before I went out, made sure that no one was there, and then hop into my car to go to the hospital. I was very careful and tried not to be in trouble… to not to get any speeding tickets, parking tickets, or anything like that. I also had a church member who was ready to hide me if the ICE agents were there so that I could take my child to hospital. We had everything planned. Luckily, I got DACA when my child was three months old.
미국의 양부모님들 (법적으로 양부모님은 아니지만, 부모님처럼 살펴주시고 스스럼 없이 대해주신 분들)께서 변호사 지인을 소개해 주셨고, 상담비를 대신 내주셔서 아이와 저 모두에게 좋은 방안이 뭐가 있을까 알아보기도 했습니다. 최악의 상황도 준비했었어요. 예를 들면 ICE (미국 이민세관단속국)에서 제가 병원이라도 가서 자리를 비웠을 때 집으로 찾아오면 어떻게 해야 하나...그런거죠. 뭐, 예를 들자면, 어디라도 나가기 전에 창밖으로 집 주변에 수상한 사람이 지키고 있진 않나 확인하고, 얼른 차로 쏙 들어가거나 그런 것도. 진짜 사소한 거라도 법을 어기면 큰일 날 수도 있으니까, 속도/주차 위반 벌금 그런 것도 포함이구요. 아이를 병원에라도 데려가야 할 때면, 교회 지인분께서 당신 집에 숨어 있어도 된다고 허락해 주셨었어요. 다 계획을 세워 놨었죠. 다행히도 아이가 3개월이 되기 전에 DACA가 승인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Like other single parents, I have a lot of hard moments because I have to do it all by myself. I have to deal with only one income when childcare is unrealistically expensive. I don't get any help from another person. It would be really nice if Alex had a father who he could spend time with and also be loved by. I feel like I'm punishing him by not being with another person.
다른 싱글맘들처럼, 혼자 모든 걸 해야 하기에 힘든 점이 많습니다. 보육 비용이 너무 어마어마하지만, 그 또한 혼자서 책임져야 하구요. 아이에게 사랑을 듬뿍 줄 수 있는 아빠가 없어서, 되려 제가 혼자여서, 아이에게 더 큰 상처를 주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My biggest fear is that somebody will come to my house and separate me and my child. I fear that even with DACA, there is a possibility that I might be deported. Maybe with just a single mistake it could happen. Not like a DUI or anything, but what if somehow I got into a car accident? What if I have to go to immigration court? What if I have to be deported that day? What am I going to do to take Alex with me? I have full custody of my child, but I've heard from people that even if I have full custody, I have to get Alex’s biological father's consent to take him out of the country. If his father is revengeful and decides to report me, I could be seen as a kidnapper. That’s bullshit.
제 가장 큰 두려움은 누군가 갑자기 집으로 찾아와서 저를 데려가는 것입니다. DACA를 받았다고 해도, 제가 추방될 가능성은 항상 도사리고 있고, 별거 아닌 실수에도 그렇죠. 음주운전처럼 범법행위뿐만 아니라, 그냥 단순한 접촉사고나 법정에 가는 것조차도 두렵습니다. 법원에 가는 날 추방당하는 걸까, 아이를 위해서 난 어디까지 할 준비가 되어 있나? 아이의 양육권을 제가 소유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이와 같이 미국을 떠나기 위해선 아이 아빠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말도 안되는 얘기지만, 아이 아빠가 복수심에 제 상황을 보고하면, 제가 아이를 납치했다는 거라고 뭐라고 할수도 있네요.
A lot of people don't understand that the American immigration system is broken. A lot of people said, “Well, you have been in America more than 20 years. Why didn’t you apply for citizenship?” It should be that easy, but it’s not. Even if it cost $10,000, I would have somehow come up with that money to do it. I'm fighting for a pathway to citizenship because there is no way for people like me to just apply. Yes, you can get married, but I'm not going to get married just for that piece of paper. I want to get married because I'm in love, because I want to be with that person. Citizenship is something that I deserve. Because this is my country. This is my home. If someone tells me, “You need to go home,” then I’d say, “Okay, I'll drive 10 minutes, 15 minutes to where I live. Alaska. I'll be home.”
많은 사람이 미국의 이민 제도는 고장 난 상태인 걸 이해하지 못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니, 미국에 20년이나 있었는데 왜 시민권이 없어?”라고 말하죠. 사실 20년 있으면 시민 아닌가요? 시민권 얻는데 한 만 불 정도 든다고 했으면, 진짜 무슨 일을 해서라도 돈을 마련했을 것 같아요. 제가 시민권을 얻는 것에 대해 이렇게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저와 같은 사람들이 그냥 지원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시민권자와 결혼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하는 게 결혼 아닌가요? 상대방과 같이 잘 살아갈 수 있어야 결혼하는 거니까. 제가 시민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 미국이, 집인걸요. 누가 저보고, “야 너 집에 가래,” 하면, “어 그래, 한 10분~15분 걸리겠네.” 생각하죠. 여기, 알래스카가 집입니다.
Both Republicans and Democrats should have compassion about why we're trying to live here. Are we trying to harm other people? No, that's not it. We are trying to pursue our American Dreams, further our happiness, and be with our loved ones, no matter if we are blood related or not. We're all families. I want both parties to work together and see our worth. We are not here to be labeled as criminals. We want to work, pay taxes, and contribute as much as citizens.
정치 진영을 막론하고 서류 미비자들이 왜 여기에 계속 머무르고 싶어 하는지 색안경을 끼지 않은 따뜻한 마음으로 바라보길 바랍니다. 저희가 남들에게 해를 끼치려고 하나요? 아닙니다. 저희도 아메리칸 드림을 쫓고 싶고, 행복해지고 싶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피가 섞이지 않은 사람들도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국회가 하나가 되어 서류 미비자들을 사람 대우해주길 바랍니다. 미국에 범죄자로 낙인 찍힌 려고 온 게 아니라, 일도 하고, 세금도 내고, 시민의 의무를 다하고 싶습니다.
If I had citizenship, I would want to be ambitious. I want to get a scholarship for law school and maybe become an immigration attorney or judge. Later on, I want to run for public office and make pathways for other people! Maybe I could travel with my child and show him where I grew up, his motherland. I don't want him to be stuck with the concept that a lot of American people have, only thinking of America first. Yes, America is a great country. But we need to work together as global citizens and love each other. We can’t only think, “I am important.” We live on the earth all together. We have to work together. I want to show Alex different cultures because I think they are amazing. I want him to learn as many languages as possible… And I want to be there with him. I also want people to know that the DREAM Act started from Tereza Lee, a Korean who visited Durbin's office because she couldn't go to Juilliard though she was qualified to go. Because of her status, she couldn't do it. As a Korean I think this is something we started. We started it and we want to finish it.
시민권이 주어진다면, 꿈을 다시 쫓고 싶습니다. 장학금도 받고 법대로 진학해 이민법 관련 변호사나 판사가 되고 싶습니다. 나중엔 정계로도 들어가 저와 같은 사람들을 위해 노력하고 싶습니다. 아이와 함께 제가 살던 동네로 여행을 가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오직 미국만을 위시하는 많은 미국 사람들과 달리 제 아이는 미국 밖의 세계도 받아들이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미국이 좋은 나라라는 것과는 별개로 국경을 초월한 사람들이 서로의 문화를 나누고 언어를 공유한다는 걸 아이에게도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렇게 성장을 지켜보고 옆에 있어 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DREAM Act는 시카고의 한인 여고생, 테레사 리로부터 시작됐다는 걸 다시 한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시민권이 없어서 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줄리아드에 진학하지 못한 테레사로부터 이 물결이 시작되었듯이, 한국인으로서, 이민법 개정은 우리가 시작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시작했고, 이제 우리가 함께 매듭지을 차례입니다.
Want to help fight for people like HJ? Join our campaign! In addition to sharing stories, we are calling Congress EVERY DAY and hosting a daily vigil at the White House for the first 100 days of Biden’s presidency to demand citizenship for all undocumented immigra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