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lany’s Story

멜라니의 이야기

(Image Description: Selfie portrait of Melany. A person with light, tan skin and long, blonde and dark hair is wearing an orange top and gold necklace.)

(Image Description: Selfie portrait of Melany. A person with light, tan skin and long, blonde and dark hair is wearing an orange top and gold necklace.)

When I was 8 years old—I was probably in 2nd grade—and my dad and mom had separated, my dad would always pick me and my brother up on Sundays. One day, he came later than usual, and it was really weird. He was really worried and I asked him what was wrong. He was crying, and he said “It’s my last time seeing you.” He explained that ICE arrived at his job at the construction site and took some people away. He was scared that he was going to be the next person and he was scared to go to work. He assumed he was going to be deported, but ICE never came back to the site. Seeing how afraid my parents were at 8 years old was the first time I learned about living as an undocumented person and citizen.

여덟 살 무렵이었어요. 초등학교 2학년 정도였던 것 같은데, 어머니와 아버지가 별거하신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일요일마다 아버지가 저희 남매를 보러 오시곤 했죠. 어느 날, 아버지가 원래 오시던 시간보다 조금 늦게 오셨습니다. 그리고 뭔가 불안해 보이셨습니다. 아버지는 근심이 가득 찬 얼굴이셨고, 제가 무슨 일 있으시냐고 여쭤봤을때, 그제야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시며 “이번이 마지막으로 보러 오는 거야”라고 하셨습니다. 이민세관단속국 (ICE) 이 아버지가 일하고 계신 공사장에 찾아왔고, 몇 명을 데리고 갔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다음에 일하러 가면 본인도 잡혀갈것이라고 말씀하셨고, 그 뜻은 강제추방 당한다는 것도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민세관단속국이 다시 일터로 찾아오진 않았지만, 8살 어린 나이에 부모님이 얼마나 걱정하시고 두려워하신다는 것으로부터 제 서류미비자로서의 삶이 시작 된 것 같습니다.

Since then, a lot has happened that caused me to take my status more seriously. My mother and I had been moving from basement to basement, so we lived with different people all the time. Soon after ICE showed up to my dad’s workplace, I experienced something very traumatic as a child that I could only tell my mom. It was something that I could not speak upon because I was afraid. When you’re the victim of a crime and don’t have citizenship, you can’t go to the cops. My parents always thought that the cops were the enemy, so I couldn’t get help. I blocked it out of my memory until later on when I was in middle school and high school. I couldn’t see a therapist because I didn’t have insurance.

그 뒤로 많은 일이 있었고, 제가 제 신분에 대해 더 진지하게 생각해 볼 기회가 되었습니다. 어머니와 저는 이 집 지하에서 저 집 지하로 이사를 다녔고,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살곤 했습니다. 이민세관단속국에서 아버지에 일터에 찾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저에게 큰 트라우마를 주게 된 일이 있었습니다. 그나마 어머니에게 털어놓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죠. 저는 어린 나이에 성폭행을 당했고, 그 일은 저를 감정적으로, 신체적으로 바꾸어 놓았지만, 저는 서류미비자였기 때문에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이야기를 들으시고 그냥 넘기셨습니다. 범죄의 피해자가 되어도 시민권이 없으면 경찰에 신고할 수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경찰은 항상 주의해야 하는 대상이지 도움을 청하는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후에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덮고 있었던 기억들이었고, 보험이 없었기에 심리 상담도 받을 수 없었습니다.

During the freshman year of my high school, I obtained DACA. Back then, my brother wasn’t always the best kid. He got kicked out of high school and had to attend military high school for misfit kids. He had a really rough time. He went to jail several times and we had to bail him out. Eventually, he lost his DACA. He couldn’t apply to jobs or anything anymore. He started doing okay for a while until he messed up big time and he ended getting locked up again. I remember getting a call at work at 10 pm. I tried to bail him out, but the cops refused to release him. He was supposed to get out of bond but he couldn’t due to the amount of charges he had, and it led ICE to take him to Farmville facility to await his court due to his pending charges, and wouldn’t release him due the thought of him being “dangerous” to the world.

At the time, I was living alone. Having to deal with the lawyers and jail visits affected me deeply. I’d be online, just searching and calling lawyers. I got very depressed and the lawyers couldn’t help my brother.

고등학교 1학년이 될 때 DACA (청소년 추방 유예 제도)를 받았습니다. 제 오빠도 같이 받았지만, 오빠는 그다지 바른 청소년은 아니었습니다. 고등학교에서 퇴학을 당해서 전학을 가야 했고, 학창 시절을 긍정적으로 이어 가는 것을 힘들어했습니다. 수감생활도 했고, 오빠를 보석금을 내고 데리고 오기도 여러 번 했습니다. 결국 오빠는 DACA를 잃게 되었고, 일을 하거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당시 며칠간은 오빠도 괜찮았지만, 며칠 후 어느 날 제가 일을 하고 있던 밤 10시에 전화를 받았습니다. 이번에도 보석금을 주고 풀어달라고 했지만, 경찰들이 오빠를 석방해주길 거부했습니다. 오빠의 잦은 범죄 경력 때문에 이민세관단속국이 오빠를 Farmville에 있는 시설로 데려간다고 했고, 오빠가 위험한 사람이기 때문에 석방해주기를 거부한다고 했습니다. 당시 전 혼자 살고 있었고, 변호사를 수소문하고 잦은 교도소 방문 때문에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온라인으로 여기저기 변호사들을 찾아보고 오빠를 도와줄 수 없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너무 힘들었습니다.

I still talk to my brother today. He tells me that Argentina and the U.S are very different and it is harder to adapt in a different country with different people, language, and culture. He motivates me to be a better person. He tells me that I should work hard and keep out of trouble. He tells me about his time at the detention center in Farmville, and that people get in trouble with just a speeding ticket. And they were all nice people too.

요즘도 오빠랑 많은 얘기를 합니다. 오빠는 아르헨티나가 미국과 얼마나 다른 나라인지 종종 말해주곤 합니다. 오빠는 본인이 자라고 나지 않은 타국에서,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지고 살아가며 적응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얘기를 해 주곤 합니다. 그럴 때면 오빠가 절 더 나은 사람이 되라고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사소한 문제 더라도, 법과의 접촉은 최대한 피해야 한다고 자주 말하곤 합니다. 오빠가 Farmville에 있는 수용소에 갇혀 있을 때 과속 티켓 때문에 잡혀 온 사람들도 많이 봤다고 덧붙이면서 말이죠.

Even as I enjoy certain protections under DACA, it’s still very restrictive. The status just has us captured, trying to make us the perfect person. People make mistakes. It shouldn’t cause them to get deported. I did research two semesters ago on how the DACA system wants to create the perfect child, the perfect immigrant. Compared to U.S. citizens, who can get away with doing worse stuff, DACA recipients are afraid to do anything. They’re afraid to go drink with friends, to go smoke, whatever. The fear affects me physically and mentally. Every time I have to make a choice, I think about DACA. Every time I’m about to go out with friends, I think about DACA. Do I stay in or go out? Do I go out and risk getting in trouble with the law? I feel anxious every time I go out. I’m scared of driving because I think they’ll pull me over and take my DACA away. There are only so many scholarships for DACA-mented students, and when I was in high school, I couldn’t apply for financial aid. So, where’s the opportunity for higher education? It’s only for people with money. As for work, some places discriminate against you for having DACA or an employment card. They say it’s about to expire soon—of course it’s going to expire soon! It’s a two-year renewal! I can’t apply for credit because so many banks want citizenship status.

DACA를 받은 입장에서 많은 보호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아직 많은 제한이 있습니다. 신분으로 우리를 규정하고 “좋은 시민”이라는 잣대를 항상 들이밉니다. 사람이라면 실수도 하기 마련이지만 그러한 실수가 강제 추방까지 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에 억압받습니다. 두 학기 전 DACA 시스템이 “좋은 시민”이라는 것을 만들어 내고 주입하는 것에 대한 연구를 했습니다. 시민권 신분인 사람들에겐 다른 법의 잣대를 댈 때, DACA 신분 사람들은 두려움에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술을 마시거나 흡연을 하는 것 조차도 두렵고, 이런 두려움은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힘들게 합니다. 인생의 모든 결정을 할 때, DACA 신분에 대해서 생각을 하곤 합니다. 친구들과 나가서 놀까? 그러다 경찰에게 잡히기라도 하면 어쩌지? 밖에 나갈 때마다 불안감이 밀려옵니다. 운전을 하다 교통경찰에게 잡힐까 봐 두려울 때도 있습니다. DACA 신분인 학생들에게 지원되는 장학금은 흔치 않고, 고등학교 다닐 땐 학자금 지원을 받는 것도 불가능했습니다. 대학 진학은 금전적 지원이 없는 저와 같은 경우는 꿈도 꿀 수 없었고, 취업을 하는 것도 DACA 신분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차별은 여전합니다. 사측에선 항상 DACA 만기일이 금방이라 채용을 못한다고 하는데, 2년마다 갱신인데 당연히 금방금방 만기 되는 거 아닌가요? 은행에 크레딧을 쌓는 것조차도 몇몇 은행들은 시민권이 필요하다고 거부하기도 합니다.

On the Thanksgiving of 2019 I got arrested for drinking and driving. I never in my life would think that this would ever happen to me especially since I am a DACA recipient. I am known as the “good girl,” working full-time, volunteering at organizations, and taking full-time classes in order to fulfill my career in the future. I was charged with a DWI and under DACA policies, a DWI is considered a “significant misdemeanor,” which automatically removes someone’s DACA status. My entire 2019-2020 year consisted of me living in fear, feeling anxious and depressed to the thought of what *if* i get DACA taken away and what *if* I get deported?

2019년 추수감사절 무렵에 음주운전을 하다 걸렸습니다. DACA 수혜자로서 제 인생에 절대로 없을 것 만 같았던 일이었습니다. 항상 “착한 아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고, 일과 학업을 병행해 가면서 미래를 위해 열심히 살아 나가고 있었습니다. DACA 규칙에 따르면 음주운전은 “중요 경범죄”로 치부되어 DACA 혜택이 취소되게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일로 인해 제 2019 - 2020년은 항상 두려움에 떨며 ‘DACA가 취소되고 강제추방 당하면 어쩌지?’라는 불안감과 우울함에 찌들어서 살았던 것 같습니다.

While I was in court for more than one year, I was still taking full time classes at Mason, working part time internship and part time job, with only Sunday’s off. I tried to keep myself busy and not think about what If I lose the case. In November 2020, I had my final court date and my DWI got dropped for reckless driving. It got dropped because of my good moral character and how I made one huge mistake in my life. But is that mistake worth losing my status in the U.S and getting deported? I believe that everyone makes mistakes in life and each mistake is an opportunity to learn. I firmly believe that no human being is perfect in the world. However, that is what current DACA policies expect out of students and young adults.

1년 넘게 법원을 들락날락하며 Mason 대학교에서 학업을 이어가고, 파트타임 인턴쉽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는 생활을 계속했습니다. 일요일만이 유일한 휴일이었죠. 소송에서 지게 되면 어쩌나라는 생각을 덜 하기 위해서 계속해서 바쁜 스케줄을 이어 나갔습니다. 2020년 11월에, 마지막으로 법정에 출석했을 때 제 사건이 기각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유는 이 사건이 제 삶에 유일한 범죄기록이었고, 그로 인한 정상참작 이었습니다. 되돌아보면 이런 실수로 인해 제가 강제추방까지 몰아져 가는 것이 옳은 법리적 행보인가 생각이 됩니다. 모든 사람은 실수를 하게 마련이고 그런 실수를 통해서 많이 배워나간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인간이 완벽하진 않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현재 DACA 행정조치는 학생들과 청년들에게 DACA 수혜자들은 항상 완벽해야 한다는 잣대를 들이밀고 있습니다.

People are afraid of talking about their undocumented status because of ICE. They’re afraid of being deported. They’re afraid of telling anyone because in the U.S. undocumented people are considered bad people, as Trump says. He says we should be deported for being killers and rapists. However, in reality, undocumented people can be punished for something as small as being at the wrong place in the wrong time. I think if we talk about it, our voices have to be heard by the people. Otherwise, what we’re saying wouldn’t be relevant. But by talking about it, by demanding that we are heard, we’re making a difference. I get people are scared, but if you don’t have a voice, what changes will be made?

사람들은 이민세관단속국 때문에 서류미비자인 것에 관해 얘기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강제추방이 무섭기 때문이죠. 트럼프 전 대통령이 항상 서류미비자들은 나쁜 사람이라고 말했던 것처럼, 제가 서류미비자라는 사실을 고백하면 절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할까 봐 두려워 합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또 서류미비자들이 범죄자이기 때문에 추방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서류미비자들은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돌아다니다가도 체포될 수 있는 상황이 많습니다. 우리가 이야기를 나눠야 목소리가 많은 사람들에게 들릴 수 있습니다.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면야 우리의 목소리가 울림이 없겠지만, 차츰 이야기를 나누고 소리를 냄으로써 작은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 저와 같은 서류미비자 여러분이 목소리를 높이는게 두렵다는 걸 잘 이해하고 있지만,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어떤 변화가 있겠습니까?


Help fight for people like Melany! Join our campaign! In addition to sharing stories, we are calling Congress EVERY DAY and hosting a daily vigil in front of Congress for the first 100 days of Biden’s presidency to demand citizenship for all undocumented immigra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