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n Jin’s Story
은진의 이야기
“I came to the United States with a plan to continue my studies in theology. I came to Philadelphia specifically because there are many good seminaries. Through my studies, I wanted to help and offer comfort through conversation to those hurting on the inside, as psychological pain tends to be more damaging than physical ones.
신학을 공부해 보고 싶다는 계획과 함께 미국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좋은 신학교들이 많은 필라델피아로 오게 되었죠. 그렇게 신학 공부를 하다 보니 내적으로 고통을 겪고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안정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밖으로 보여지는 고통보다 심리적으로 혼자 이겨 내야 하는 아픔이 더 가혹한 법이니까요.
Because of a series of missed chances, I failed to keep my status. I didn’t give much thought to the impact and implication that one’s immigration status has on one’s life here. It wasn’t just one incident or one decision that led to me falling out of status. I would rather not share what exactly happened, but it was a series of incidents built up to that point.
이후에, 일련의 사건들을 지나다 보니 어느새 서류미비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이민자 신분을 가지고, 그리고 그 신분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미처 생각하지 못했었습니다. 어느 한 사건때문에 서류미비자로 지내게 된 것은 아니었고, 그 세세한 내용들을 여기서 다루기엔 힘들지만, 여러 고초를 겪다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Because of my lack of status, my children could not go to college, and because I could not drive, my children were limited even more in their studies and activities.
제가 서류미비자로 체류중이기에 제 자녀들은 대학에도 갈 수 없었고, 제가 운전면허를 딸 수 없어서 자녀들의 방과후 활동이나 학업에도 제한이 있었습니다.
My son wanted to go to Penn State University, and he was admitted, but the tuition was too high for us, since we did not have any immigration status, he was unable to get any student loans to help with the cost. Like most kids today, he wanted to study computer science. Instead of going to the state university, my son went to community college, and even then, the tuition was still too high. While in-state tuition was thousands of dollars, my son would have had to pay tens of thousands of dollars in out of state tuition because of our lack of status. I remember him asking, “would I be able to get a job after graduation even if we scrape up the money for tuition?” My son concluded that he could not afford his studies, so he got a job.
제 아들은 펜실베니아 주립 대학교 (Penn State University)에 진학을 희망했었고, 붙었었지만 학비가 너무 비쌌습니다. 서류미비자 가족으로서 학자금 대출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죠. 요즘 많은 고등학생들이 그렇듯이 제 아들도 컴퓨터공학 전공을 하고 싶어했습니다. 하지만 주립대에 입학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등록금을 낼 수 없어서 지역 전문대학 (Community College)에 진학하였지만, 그 조차도 너무 부담스러웠습니다. 주 내 출신 학생용 등록금은 몇천불에 불과하였지만, 아들은 이민 신분이 없기에 그 몇배가 되는 등록금을 내야만 했죠. 그 즈음에 아들이 저한테 했던 질문이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등록금 긁어모아서 졸업하면, 내가 원하는 직장에 취직은 가능하기나 할까?” 아들은 학업을 더 이상은 이어 갈 수 없다고 생각하고, 바로 일자리로 결정했습니다.
My daughter always enjoyed studying. She wanted to be a doctor, but after seeing what her brother went through, she also gave up the idea of studying at a college from the beginning. When my daughter was in the 10th and 11th grade, her school counsellor told her that it’d be pretty difficult for her to pursue college if she cannot take out a loan. My daughter had so many dreams growing up. She was the kind of kid who wanted to try out so many things. But, she had to hear so many, “no’s” and “you cannot do this” and “you cannot do that.” For now, my daughter tells me that “I will study what I can, where I am, little by little,” and she is currently taking two classes at a community college. She, too, wants to focus on her studies at a school dorm like her other friends, but that’s not an option for us because of so many restrictions. In this country, you either have to excel or have enough money. That’s the way it is.
저의 딸은 항상 공부 하는 것을 즐거워 했습니다. 의사가 되고 싶어 했지만, 오빠의 시련을 보면서 대학에서 공부하는 꿈을 포기 하였습니다. 딸이 10학년 부터 11학년 이었을 때, 카운슬러가 대출을 받지 않으면 대학에 가기 힘들 것 이라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나의 딸은 자라면서 꿈이 많은 아이 였습니다. 항상 무슨 일이든지 노력하고 경험하고 싶어하는 아이 였습니다. 하지만 “너는 안된다” 그리고 “너는 할 수 없다” 라는 말을 듣고 자라야 했습니다. 딸은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할 수 있는 한 공부를 할 거야, 어디에 있든지, 조금씩 조금씩 할게.” 현재 딸은 지역 전문대학에서 수업 두개 정도를 이수하고 있습니다. 딸아이도 다른 또래 친구들과 같이 기숙사 생활도 해보고 싶지만 여러 제약 때문에 불가능할 뿐 입니다. 이 나라 에서는 돈이 많이 있던지 아니면 뛰어나거나 특별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게 미국의 현재니까요.
I fear for my children every day. I fear that we might come across ICE, that ICE might raid our home. I also am fearful because my driver’s license is not from Pennsylvania, and I always feel fear when I drive around, when I see the police, or whenever I meet someone and have to show my ID, like when returning anything I purchased. When news about the “REAL ID” came out, I felt even more intimidated. I could feel it in my bones. Because I don’t have a “normal driver’s license,” I feel even more pressure, and now with the “REAL ID” available, I wonder if the police will take a closer look at my driver’s license and then question and investigate?
나는 우리 아이들 때문에 매일 매일이 두렵습니다. ICE를 마주칠까 두렵고, ICE 가 불시에 집으로 들이 닥치지나 않을까 두렵습니다. 저의 운전면허도 펜실베니아에서 발급된 것이 아니어서 운전 하면서 경찰을 볼때마다 두렵고, 그리고 물건을 반품하며 신분증을 보여야 할 때도 두렵고, 어느 때든지 누군가에게 운전면허증을 보여야 할 때마다 두렵습니다. REAL ID 뉴스가 전해 졌을 때도 겁이 났습니다. 뼛속까지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나는 정상적인 운전면허증을 발급 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로인한 부담이 더욱 커졌고, 이제는 REAL ID를 발급 받게 된 현재의 상황에서 만약에 경찰이 저의 운전면허증을 자세히 살핀후 추궁하고 조사 받게 되는 것은 아닌지 정말 두렵습니다.
I wish for the new Administration to provide a pathway to citizenship for all undocumented immigrants, whether children or adults. Immigrants help make up this country, and yet we face so many severe restrictions in life. I wish everyone had the freedom to migrate and move freely.
저의 소원은 새로운 행정부가 어린 아이부터 어른까지 서류 미비자들에게 미국의 시민권을 제공하는 길을 만드는 것입니다. 미국은 이민자들로 시작되었고 이민자 들로부터 만들어 졌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너무도 많은 제한적 생활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민자의 나라에서, 누구나 자유롭게 이주하고 이동할 수 있는 자유가 없다는 것은 어폐입니다.
Without citizenship, my children cannot pursue the careers that they want, and instead, they are taking any job that is available based on our circumstances. If we get citizenship, my children and I will be able to choose and live our lives on our own terms, doing what we really want to do. For me, I’d like to do missionary work and getting citizenship will help me to do so. I’d like to send my children for missionary work too. Without citizenship, I am not able to travel nor study. I planned to study here, but couldn’t because of my status. When I get citizenship, the first thing that I’d do is to study!
시민권이 없이 제 아이들은 원하는 직업을 꿈꾸기 어렵습니다. 그때마다 처해진 상황에 따라 할수 있는 직업을 택해야만 합니다. 시민권을 갖게 된다면, 저와 저의 아이들은 자신들의 능력에 따라 하고싶은 일들을 스스로 선택하며 원하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저는 선교 생활을 해 보고싶고, 시민권이 생긴다면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이됩니다. 그렇게 되면 자녀들이랑 함께 선교일을 해 나갈수도 있겠죠. 하지만 시민권이 없기에 공부는 커녕 자유로운 이동도 불가능 합니다. 시민권이 없어서 학업을 이어 나갈 수 없었는데, 시민권을 가지게 된다면 그날로 바로 공부하러 갈 생각입니다.
Since moving to the US, I’ve learned a lot about human nature. Living as an immigrant is not easy, especially without status, families, or the protection of a community. Because of this reality, I try harder to pull myself together. There are moments of disappointment, desperation, and moments when I don’t want to live anymore, but that’s not an option so I pull myself together again.
미국으로 이민 온 후에 사람의 본성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이민자로 사는 것은 쉽지가 않습니다. 특히 가정, 신분, 지위 등 모든 것이 공동체의 보호가 없이는 더더욱 어려웠습니다. 이러한 현실 때문에 저희들은 더욱더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실망과 절박한 순간들과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을 만큼의 자포자기 했던 시간들도 있었지만 그것은 나의 선택사항이 아니었기에 하루 하루 제 마음을 가다듬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Personally, I believe God sent me here. Of course I wanted to come to this country, but that too was under God’s sovereignty. I don’t think it’s right to go back to Korea simply because of the difficulties I experience here. I will stay here no matter what. Why did God send me here? I am not yet to find the answer. I still believe God has his own plan to send me here, and I will do my best till he says stop.
개인적으로, 하나님께서 저를 이곳으로 보냈다고 생각됩니다. 제 개인적인 의지도 있었겠지만 그 또한 신의 주권 하에 있는것이니까요. 현재 주어진 상황이 너무 어렵고 불편하다고 해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일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에 최대한 오래 머물고 싶습니다. 신께서 왜 저를 이러한 시련에 들게 하셨는지 아직 답을 찾지 못했지만, 당신의 계획을 계속 따라가고 싶고, 이제 여기까지다 라는 계시가 있을 때 까지는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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