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n Young’s Story
원영의 이야기
You could call it a mother’s greed, but I first moved to the U.S. for my children’s education. I had never been in the U.S. before that. Frankly, my previous life in South Korea was difficult. Work was difficult and education fees were high, so I came to the U.S. through an acquaintance’s suggestion. When I first got here, everything seemed better. I had a bad case of rhinitis, and breathing in yellow dust worsened my condition so much that I had to have two surgeries. I felt like I could breath and relax in the United States.
엄마 욕심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애들 교육 때문에 미국으로 왔어요. 그때 처음으로 온 건데, 사실 그전에 제가 한국에서 엄청 힘들었었거든요. 제가 하는 일도 힘들었고, 교육비도 너무 많이 들고, 그래서 아는 지인을 통해왔어요. 처음 왔을 때 그냥 막연하게 좋았어요. 공기도 좋고, 한국에 미세먼지 때문에 제가 비염이 너무 심해서 수술을 두 번씩이나 했는데. 미국의 공기와 여유라던가…그런 것 때문에 많이 좋아졌어요.
I started working as soon as I moved to the U.S. At first, I worked at a hair salon. However, I wasn’t making enough to provide for my children. Afterwards, I started working at restaurants. Perhaps I would’ve felt discriminated against if I understood English, but I couldn’t really tell otherwise. I just thought: “America is a place where you get what you put in.” Of course, I had worked hard in Korea, but I also felt that the “waitress” label carried a bad reputation. In America, I believed that, no matter what job I have, my family and I will live well only if I work hard enough.
미국에 와서 바로 일을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일 년 동안 미용실에서 일했어요. 근데 그거 가지고는 여기서 먹고살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그다음부터 식당에서 일하게 됐어요. 제가 영어를 잘 알아들을 수 있었다면 차별대우를 이해하거나 맞닥뜨렸을 텐데, 영어가 능숙하지 않아서 그런 것에 대한 무시를 못 느꼈어요. 그냥 ‘미국이라는나라는 열심히 사는 사람들에게 기회가 열리는구나!’ 생각했어요. 물론, 한국에서는, 제 나름대로 열심히 살려고하긴 했는데, 솔직히 한국에서 식당 서빙을 한다고 하면, 좀 안 좋은 이미지였는데, 미국에서는, 제가 어떤 직업이든지 나에게 일한 만큼 누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The biggest difference between living in Korea as a citizen and living in the United States as an immigrant who cannot speak English was that I needed help with everything. In Korea, I tried to help people whenever I could. Maybe that was why asking for help was a little bit easier. By help, I don’t mean anything significant. If someone needed a ride, I would drive them. I thought Americans would be the same way, but the culture here is a little different. People did not offer help; I had to ask, whether it was finding the DMV or learning about schools here. Asking for help was the hardest part of being an immigrant. It still is. For example, as an undocumented immigrant, I am always at a disadvantage at work. There’s always the chance that I am being exploited. I cannot ask questions about how much they take off my salary for taxes, I cannot control my schedule-- those kinds of things. Even as my neighbors and acquaintances knew about my situation, they did not ask how they can help. I’m not necessarily saying that’s a bad thing because if I ever did ask, they would gladly accept. However, getting to that ask in the first place is always so hard for me.
미국에 오면서 제일 큰 변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도움을 받아야 해야 했어요. 한국에 있었을 때는 제가 조금 부족해도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며 살자고 생각했는데, 미국에 오니까 다른 현실이었죠. 그래도 한국에서 도움을주고 요청하는 것이 익숙해서, 미국에서도 도움을 요청하고 받는 것에 대해 좀 쉽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큰 거는아니더라고 누가 어디를 가야 하는데 차가 없다고 하면 제가 같이 가주고, 저는 미국도 그런 마음일 줄 알았어요.그런데 미국은 역시 문화가 조금 다르더라고요. 제가 먼저 도움을 청하지 않으면 누군가 나서서 도와주려고 하진않더라고요. 예를 들어 신분이 없기 때문에 일하면서 당하는 불이익이 있어요. 우리 같은 서류 미비자가 일을 하면 세금을 내는 조건으로 다 떼고 주지만, 그 액수는 세금 신고도 할 수 없고, 그렇다고 해서 따지거나 질문을 던지기에도 애매해요. 신분이 없기 때문에 저희 같은 경우에는 스케줄을 주는 대로 일을 해야 하는 건 다반사고요. 영어도 못 해서 DMV를 가는 것부터, 학교 알아보는까지 하나하나 부탁 해야 하는데, 한국에 있었던것처럼 누군가나서서 “내가 해줄게.”라고 해주지는 않더라고요.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냥 한국이랑 다른 문화더라고요.지금도 누구한테 부탁하고 도움받는 게 제일 힘들어요. 미국에 왔는데 내 주위 사람들이 나의 형편을 알고 내가힘들어하는지 아는데 그분들이 굳이 나서서 도와주려고 하지 않고, 내가 부탁을 하면은 흔쾌히 해주기는 해요. 근데 제가 그 부탁까지 하기까지 너무 힘들었죠.
I can’t quite explain why. Or rather, I can’t pinpoint a reason. I can only explain the feeling as my heart shrinking, cowering. First of all, I don’t have citizenship. It’s my inferiority complex. I worry that people look at me and wonder why I choose to live here when I cannot take care of myself. I assume that about other people--about how they view me.
꼭 짚어서 말하지는 못하겠는데, 마음이 위축된다고 해야죠. 미국에서 오래 살면서 일단은 첫 번째, 나는 신분이없으니까. 제 자격지심일 수도 있는데, “왜 그러면서 미국에 살고 있을까?” 다른 사람들이 그런 시각으로 보지 않을까?—그런 것에 대한 피해 의식이 있죠.
Even as I still struggle with asking for help, the pandemic has caused me to reflect about this, especially because of how much I’ve been able to depend on my community at my Korean church. They worry about me and try to help me financially. I say I’m okay, but they insist! Even then, I feel apologetic and guilty--I wonder whether I deserve to live with all this external support, especially when I cannot help others. That’s when my heart hurts. I hope to one day be able to help others too.
이번에 코로나 일 터지면서 교회에서 걱정해주시고 물질적으로 도와주고 싶은 분들이 많았어요. 제가 괜찮다고해도 억지로 주더라고요. 저는 그게 또 정말 미안하고 죄스럽고, 감사했어요. 제가 도움을 받으면서도 제가 남을돕지 못할망정 이렇게 도움을 되려 받으면서 살아야 하나…그런 것 때문에 마음 아픈 것들이 있었어요. 제가 나중에 여유가 되면 꼭 다시 베풀고 싶다는 마음의 짐이 조금 있어요.
Although sometimes I want to return to Korea, my kids are deeply afraid by the thought of moving to Korea. First of all, my kids could not go to college here. Had my kids gone to college here, maybe they would’ve had the confidence to go to Korea. But, we’re always hearing news about how, in Korea, even college graduates have trouble finding a job. In fact, I used to hear the same stories about struggling youth when I lived in Korea all those years ago. When I listen to the news, I understand why my children would feel afraid. In the case of my daughter, she is keenly interested in working with children. She attended Northern Virginia Community College for a while, but without tuition assistance, the situation became difficult. Because we could not pay for tuition, she stopped attending after one or two semesters.
제가 한국을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있을 때도 있긴 해도, 우리 아이들도 한국에 돌아가는 것 대해서 두렵다고 말하곤 해요. 일단 애들이 여기서 대학을 못 간 상태에요. 그래서 아이들이 대학이라도 나왔으면 한국에 가서 뭐라도 자신이 생길 텐데…한국에서는 뉴스가 대학, 대학원을 나와도 취직하기가 힘들다는 뉴스를 듣고, 오래전 이야기지만 저도 그때 청소년들이 취업을 못 한다고 얘기를 했거든요. 뉴스를 듣고 아이들이 그런 마음을 갖는 게 이해가 가요. 딸 같은 경우에는 아이들 가르치는 데 관심이 많아서 Northern Virginia Community College를 잠깐 다녔어요. 근데 버지니아에서 in-state 지원 없이 학교 다니기에는 너무 힘들었죠. 한 학기인가, 두 학기인가 다니다가학비가 없어서 못 다니고 그런 상황이었어요.
Because I’ve lived as a workaholic, obsessed with work, people ask me why I live this way. Even my kids say, “Please, mom go enjoy your own life!” But I can’t shake off the thought that, because I am a mom, I need to stay strong for the kids. Even so, I’ve failed at things like caring for the kids. In hindsight, I regret not trying to talk to my kids more, to hold their hands more. I did not ask my kids what they were thinking about or what their worries were. I always tell myself that “I work for the kids,” but, really, I think that I just worked for myself. I feel guilty towards my kids because all I knew was work. I hope my kids understand what kind of situation I was in. I try not to feel so discouraged when they feel resentful towards me either. Maybe that sense of guilt is just part of being undocumented and a mom. Right now, citizenship is just another way in which we divide people with money and people who don’t have money. I don’t want citizenship just for those who can afford the application fees and the lawyers, or for those who can obtain citizenship. Being a citizen for me means to live confidently and unapologetically.
제가 너무 일 중독, 일에 빠져서 살다가 보니까, 사람들이 저보고 왜 이렇게 사는지 물어볼 때도 있어요. 저희 애들도 “엄마도 엄마 인생을 즐기면서 살아” 이렇게 얘기하지만 “나는 엄마니까, 나는 무너지면 안 되니까”라는 생각이 커요. 어떤 면에서 보면 아이들을 잘 뒷바라지 하는 데에 실패한 거죠. 아이들과 대화도 좀 더 자주 하고, 손도자주 잡아보고 해야 했는데, 저 같은 경우에는 아이들이 무슨 고민,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고 저만 열심히 살아온 거죠. 마음속으로는 “아이들을 위해서 일했는데,” 라고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돌이켜 보면 저는 정말 제 일만 한 거에요. 그래서 미안한 마음 저편엔, 아이들이 제가 처해 있던 상황을 조금 이해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기도 해요. 아이들이 서운하다고 해도 제가 너무 좌절하지 말고 나아가야 하는데, 어찌 보면 이런 모든 게 제가 엄마이고 서류 미비자이니까 느끼는 건 아닌가 생각도 들어요. 현재 시민권이란 것은 우리 사회와 이웃들을 돈이 있는사람과 없는 사람으로 양분하는 잣대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신청서류와 변호사 비용을 감당 할 수 있는 사람만이가질 수 있는 권리가 아니라, 자신 있고 당당하게 살아나가기 위해 모두가 누릴 수 있길 바래요.
Want to help fight for people like Won Young? Join our campaign! In addition to sharing stories, we are calling Congress EVERY DAY and hosting a daily vigil at the White House for the first 100 days of Biden’s presidency to demand citizenship for all undocumented immigrants!